바람이야기 - 그날 이후

1
결혼을 통해 두 남녀가 만나
백년을 약속한다지만,
가부장의 권위가 필요했던
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는 언제나 기득권이 존재했고
그 기득권의 이해와 요구가
가부장 문화의 탈을 쓰고
제도를 만들어
엉터리 관념을 강요해왔던 시대!
개인의 선택에
자책과 양심의 관념을 씌워
운용됐던 시스템
단지
그 제도 속에 포함되길 간절히 원했던 것은
혼자 행복할 자신이 없었을 뿐.
불안해하던 마음을
인질로 삼아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아내는 지금쯤
행복한 삶을 만끽하고 있었을까?
하지만
아내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묻고
비릿한 내음을 물고 빨아도
아내가 몸을 틀어
참았던 탄식을 쏟아내도
당시 난
독점에 대한 수컷의 본능을 잠재울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아내는 그 애띤 청년과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그렇게 만나왔을 테고
나보다 더 싱싱하고 젊은 육체에
질척대는 교태를 마음껏 쏟아부었을 테니
그 지점을 떨쳐버리기엔
내 그릇이 너무
좆만했다.
2
다시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다.
하지만
시청의 외진 담벼락에서
젊은 청년과 뒤섞였던
담쟁이 기둥 한 켠에서
가쁜 숨을 참아내던 아내를
탐닉했던 것 말고
당시의 내가 아내에게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한 잔 술에
현란한 정치 사회적 담론들.
그 담론 하나로 끝날 줄 몰랐던 대화들이
이젠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그 어색한 느낌들을 대신 채웠던건
흥건한 욕망 뿐이었다.
3
“내 지적 호기심이 섹시하다고 했던 말 기억나?”
“.....”
“머릿속에 뒤죽박죽 엉켜 있는 것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놓는 허영이 그렇게 섹시했어?”
그날 이후
간절했던 태도를 바꿔
아내는 몇 잔 술을 의지해 날을 세웠다.
“큭! .... 지금도 그래?”
“난 관계 지속을 위해 몸을 줬고,
오빤 욕망만 가득 채웠는데....”
“오빠.... ”
“부탁인데.... 내게 복수하려 들지 마..”
공동체의 가치가
자본의 논리에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자본은 그 가공할 물량공세를 통해
대중의 의식을 어떻게 좀먹어왔는지
그 틈새를 비집고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 지
20대 후반 젊은 아가씨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던
정연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들이
그녀의 뽀오얀 볼살과 함께
내 욕망을 자극했을 때
대담하게 그녀에게 꺼냈던 말
“섹시하다.”
아내는 지금
묻고 있는 것이다.
시간가는 줄 모를 만큼 풍성했던 대화가
단절되었음에도 자신은 내게 여전히 “섹시한”지
당신의 그 욕망은
근거가 있는 것인지
그렇게 자신의 몸만 탐해도 되는건지.
‘넌 젊은 아이와 몸을 섞으며 욕망의 근거를 물었느냐.’고
목젖까지 차오르는 질문을 집어 삼키며
난 또 한 번 아내 앞에서 주저 앉고 있었다.
4
대학 후배의 소개로
아내를 처음 만난 날
아내와 간단한 손인사로 살짝 스쳤던
하얀 피부색의 준수하게 생긴 청년 하나.
얼굴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았지만,
난곡동 자취방에서 아내는
그가 담쟁이 아래의 주인공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날도 아내는
나와 헤어진 후
그 청년과 함께
농익은 욕망과 쾌락을 나누었을 테지
고백을 수용하고
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음과 몸이 뒤섞여
서로에게 익숙하고 편안해졌음에도
주변의 절친에게까지
입을 굳게 다물었던건
나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소
진보적 담론들을
명쾌하게 풀어내던 아내였지만,
남녀 관계에 있어선 유독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순종적인 편이었다.
그런 보수관념이
8살 차이의 청년에겐
언감생심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작용했을 터!
아내는 늘
원하지 않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을테지.
난곡동까지 단숨에 달려와 울먹일 만큼
나도 사랑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었지만,
헤어지면 떠오르는 젊은 청년과의 흥건한 동영상이
내내 내 욕망을
저급한 수렁으로
처박아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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