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이야기 - 내가 경험한 창녀

1
중학교 3학년 졸업무렵이었을까?
당시의 절친 이관우와
집에서 돈 몇 푼을 훔쳐
가출을 시도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서울행 직행버스에 몸을 실은
내 생애 첫 불안했던 가출.
생각보다 건물들은 허름했고,
몹시 커보였던 용산 극장의 간판과
후미진 골목 골목들.
당시 서울이 내게 주었던 인상이라면
낯 선 두려움쯤은 아니었을까?
그 두려움의 어느 지점
후미진 골목들 끝자락에서
잠깐 스쳐보았던 창녀는 우리에게
"이쁜이들아! 쉬었다 가라"며
깔깔거렸고,
지금은
불쾌감이었을지,
무서움이었을지
아니면
휑~함이었을지 모를
아련함만 남았다.
2
녹원아파트를 나와
대전역으로 가는 택시안에서
창녀를 생각했다.
욕정이라기엔 어이없었고
복수라기엔 부질없었다.
창녀와 교감 없이 몸을 섞는다 한들
담쟁이 넝쿨 아래에서 나눴던
그들의 숨가쁜 순간을 지워낼 수 없었을테니.
현실이 빈약한 자는
스스로 감정을 위로할 수 없다.
그게
자본사회가 내게 강요한 원칙이었고
어딘가로 기차를 타고 떠나겠다는 치기도
현실 앞에선 그만큼 무력했다.
난
임용시험 준비에 몰두하며
임시직장에 몸담고 있었던
가난뱅이에 불과했으니까.
3
당시 잠시 몸을 의탁했던
서울 난곡동의 반지하방
그 낯선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꾸역꾸역 올라오는 것은
슬픔이나
혹은 분노가 아니라
외로움이었다.
겨우겨우 다잡아 놓았던 결핍증이
아내를 만나 무장해체되었고
대책없이
행복한 순간만 만끽하던 중이었으니
갑자기 밀려온 고독감을
혼자서 인내하긴 힘에 겨웠다.
목적지인 서울역을 포기하고
수원역에서 내린건
그렇게 비워버린 공백을
창녀로 채워보겠다는 심사였고
수원역 근처에서
나를 잡아 끄는 아줌마를 따라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간 것도
허기진 심사를
그렇게라도 채워보자는 발악이었다.
4
미닫이문으로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어둡고 습기찬 곳.
여기저기 휘둘리다
정착할 곳이 없어 찾아든 공간치고
비교적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쯤 했었을까?
창호지를 바른
전통식 미닫이 문을 열자
코끝을 자극하는 역한 술냄새와 함께
나를 부르는 창녀가 보였다.
술에 절어 깔아진 채
빈껍질만 남아버린 몸둥이 하나로
자기 몸을 탐닉할 남자를
이리 들어오라 호령하고 있었다.
5
"환불은 안되는데~"
"저 아가씨가 싫다면 나라도 괜찮을까?"
나를 끌고 온 아줌마가
등돌린 내게 던진 몇 마디 말들이
귓전에 어렴풋하게 남아 있고,
술에 깔아진 창녀를 남겨 놓고
왜 미닫이 문을 매몰차게 닫아버렸는지
도망치듯 그곳을 나와버렸는지
동이 터오는 수원의의 새벽은
잔인할 만큼 갑갑했다는 기억 말고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은 없다.
6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내 집 현관에 들어설 때
영화나 드라마에 심취해
혼자 막걸리로 밤을 보낼 때,
불쑥불쑥
오만원에도 팔리지 못한 채
미닫이 너머로 깔아져 있던
창녀가 떠오른다.
그 장면 그대로를
지금으로 옮겨올 수만 있다면,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아
세상에 속절없이 무너진
그 빈껍질 몸둥이를
온 정성으로 씻어주고 닦아주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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